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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따뜻하고 배불렀던 화가 루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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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산 피카소와 고흐는 천재화가였다. 하지만 경제적 측면에선 피카소는 갑부였었고 고흐는 빈털터리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 답을 찾아서 본인이 2013년에 출간한 책이 <세일즈맨이 미술관으로 간 까닭>이란 이 책이다. 열정의 화신이자 천재 화가였던 고흐는 왜 부자가 되지 못하고 한 평생 가난뱅이로 살았을까?’

모든 예술가들이 돈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돈이 창작의 동인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작품에 기꺼이 투자하는 자본가들이 있기에 예술은 진보한다. 그래서 예술과 자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미켈란제로는 "돈은 내가 이루어낸 온갖 눈부신 업적의 동인이었다."고 말했고 마네는 "내가 지금 원하는 건 오로지 돈을 버는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잘 알다시피 예술의 부흥인 르네상스는 고리대금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술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은 위선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았다. 예술가를 자유롭게 풀어 준 것은 다름아닌 돈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림 그린다면 가난뱅이로 무시당하던 그 시절에도 등 따습고 배 불렀던 화가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 ~ 1640)였니다. 그는 가난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서양 예술사상 가장 화려한 인생을 산 화가 중 한 명이었다.

루벤스가 다른 화가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부를 쌓은 비결은 무엇일까? 먼저 탁월한 예술적 재능이다. 그는 “내 재능은 워낙 빼어나 제아무리 복잡한 구도의 대작을 그리더라도 자신감이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인문학자이며 고전학자로 라틴어 프랑스어 등 6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사람들은 그런 루벤스를 “세상에서 가장 교양 있는 화가”라고 했으며, 외교관에 임명돼 유럽 최고 권력자들과 인맥을 형성하기도 했다.

 

루벤스는 비즈니스 능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밀려드는 주문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주문 수량을 소화하기 위해 창작 방식을 혁신했다. 그의 저택에 대규모 작업실을 열고 유능한 화가들을 고용해 분업으로 주문 받은 작품들을 완성했다.

 

독자적인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17세기 유럽의 대표 화가인 그는 천재적 창의성을 비즈니스화하는데 남다른 소질을 보여, 죽을 때까지 재산이 가물었던 적이 없는 미술 역사상 뛰어난 비즈니스맨이었다.

 

 루벤스는 고객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포착하고 제공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예의 바른 태도와 6개 국어에 능통한 풍부한 학식 등으로 개인적인 매력이 넘쳐났다고 한다. 매력이 없는 유능한 비즈니스맨, 부자는 없다. 한마디로 루벤스는 그림이라는 예술작품을 명품이라는 상품으로 만든 마케터이자 비즈니스맨이었다. 그것이 그를 경제적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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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도불이

세간 속에 도(道)가 있다. 부(富)를 이루는 방법을 깨닫는 일은 세간의 일이지만 동시에 도(道) 닦는 일이다. 도(道)를 알아야 돈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부와 가난함의 원인을 외부가 아닌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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